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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2012/05/20 11:53, 마케팅 이슈]
사랑합니다. 고객님~
 
한때 어느 통신회사의 전화 응대가 유행이었다. 처음에는 신선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똑같은 톤의 인사는 지겨워졌다. 아직도 이런 틀에 박힌 서비스는 점점 더 늘어가고 있다. 바로 서비스 매뉴얼 때문이다. 매뉴얼은 다양한 고객 접점에 있는 직원들의 서비스를 통일시킴으로써 브랜드 이미지 혹은 컨셉트를 일관되게 유지하기 위해 많이 쓰인다.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은 입구부터 화장실까지 전체가 매뉴얼로 래핑Wrapping 되어 있다. 프랜차이즈가 곧 매뉴얼 산업이기 때문이다. 인테리어 매뉴얼, 서비스 매뉴얼, 커피 레서피 매뉴얼 등이 모두 전국 어느 가맹점을 가든 똑같은 분위기, 똑같은 서비스, 똑같은 커피 맛을 내기 위해 매뉴얼은 필수요소다. 가맹점주는 사실상 이런 매뉴얼을 얻기 위해 가맹비를 지불하는 것이며, 체계화된 매뉴얼이 없다면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존재 의미가 없다. 그런데 브랜드를 살리기 위한 매뉴얼이 때로는 브랜드를 망치는 첨병이 된다. 
 
햇살이 찬란한 오후, 동료와 함께 커피 전문점에 들어선다. 둘은 주문 대에 서서 카푸치노와 마키아또를 주문하고 재킷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신용카드를 건넨다. 카드를 받은 직원은 상냥하게 주문을 확인하고 카드를 긁는다. 그리고 카드 결제 승인이 떨어지질 때까지 친절한 직원과 나는 몇 초를 기다린다. 어색한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승인이 떨어졌다. 커피점 직원은 서비스 매뉴얼에 따라 신용카드와 진동벨 그리고 반 정도를 접은 영수증을 차곡차곡 쌓아서 다시 돌려준다. 나는 한 뭉치를 받아들고 동료가 기다리는 자리로 간다. 자리에 앉아 진동벨을 탁자에 올려놓고 영수증을 주섬주섬 챙기고 신용카드를 원래 있던 지갑으로 다시 넣으며 동료에게 말을 건넨다. 계산 과정에서 거의 모든 커피전문점이 서로 매뉴얼을 공유하는 것 같다. 
 
왜, 승인이 떨어지기 전에 고객에게 카드를 다시 돌려주지 않는 걸까? 승인을 기다리는 그 몇 초 동안 고객은 신용카드를 지갑에 집어넣고 한 손에는 진동벨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주머니에 영수증을 챙겨 넣을 수 있으련만. 도대체 왜 손님을 불편하게 하는 건가. 범인은 매뉴얼이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커피 전문점을 가면 99%는 신용카드를 먼저 돌려준다. 신용카드를 먼저 돌려주지 않는 1%는 프랜차이즈에서 근무했던 직원이 직장을 옮긴 경우일 것이다. 이처럼 매뉴얼은 브랜드 이미지를 일관되게 좋게도 하지만 일관되게 나쁘게도 한다. 
 
동일한 브랜드가 아닌 동일한 업종에서도 관습적 매뉴얼의 폐해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한민국'표' 분식점에서 물은 반드시 셀프다. 물이 셀프인 이유는 고정 인건비를 줄여 더 저렴한 가격에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바쁜 시간에 물 나르고 반찬 나르고 음식 따로 나르면 그만큼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객은 한가한 시간에도 분식점에 가면 반드시 물은 스스로 떠 마셔야 한다. 매뉴얼이 정해진 근본적인 이유는 이해하지 못한 채 습관처럼 따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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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의 폐해는 이처럼 큰 브랜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비스 제공자가 정해 놓은 운영 규칙이 소비자에게 커다란 불만 요소가 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얼마 전 가든파이브에 있는 찜질방을 갔다. 한적한 아침 시간이었다. 찜질방 안에 있는 식당에 들러 일행과 함께 초밥, 돈가스, 우동을 시켰다. 계산을 먼저하고 자리에 앉아 기다리면 대기 순서에 따라 번호가 뜨고 주방에 딸린 배식구에 가서 음식을 가져오는 자체 매뉴얼이 운영되는 식당이었다. 우리는 주방에서 5걸음 정도 떨어진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2명 정도의 주방 식구들이 조리하기 시작했고, 우리가 앉은 자리 바로 뒤, 그러니까 배식구 앞에 3명 정도의 아주머니가 드라마 재방송을 보기 위해 TV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음식을 먹는 테이블 가운데에는 A4 반절 크기의 메모가 적혀 있다. 
 
"음식을 다 드신 후 식기는 주방으로 반납해 주세요."
 
직업병이 도졌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매뉴얼이었다. 유부초밥 5조각에 4천 원, 돈가스는 8천 원이나 하는 식당에서 음식을 가지러 가고 다 먹고 친절히 반납까지 해야 한다니. 유부초밥은 꽤 오래 전에 만든 듯 밥이 다 식어 있었다. 같은 가격에 전문 식당에 가면 친절한 서비스를 받으면서 편안하게 먹을 수 있다. 도대체 왜 이 비싼 밥을 먹으면서 식기 반납까지 해야 하는가? 가격이 더 저렴하면 설거지까지 시킬 것 같았다. 나는 의도적으로 식기를 반납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밥을 먹으며 계속 생각했다. 만약 식기를 반납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드디어 냉장(?) 유부초밥을 다 먹고 일어서서 식당을 나서고 있었다. 편안하게 앉아서 드라마를 보던 3명의 아주머니 중 한 분이 당당하게 외친다. 
 
"식기 반납하고 가야 해요." 
 
그 시간에 손님은 우리 외에 딱 한 팀이 더 있었다. 아주머니는 세 분이나 있었고 모두 손님을 위해 준비된 TV를 관람하고 계셨다. 그 아주머니는 사실 TV 시청을 제외한 모든 행동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 망할 매뉴얼이 문제였다. 식당이 준비한 매뉴얼은 손님이 음식을 가져오고 다시 반납하는 것이었고, 아주머니는 손님이 비운 자리를 다시 깨끗이 정리정돈 하는 것이었다. 아주머니는 상당히 매뉴얼을 잘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매뉴얼이 주는 폐해를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매뉴얼의 존재 이유를 이해하는 일이다. 매뉴얼은 누구를 위해 준비되었는가? 찜질방은 완벽하게 공급자 입장에 맞춰져 있다. 외부와 차단된 시설에서 독점적 지위를 보장받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커피 전문점 계산대의 문제점에 대해 몇 명의 관계자에게 얘기한 적이 있다. 그들은 몇 가지 이유를 들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 문제점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가 어떤 것인지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 외에 거의 모든 커피 전문점과 호텔, 백화점, 편의점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그렇게 하고 있는데 왜 유독 커피전문점에서만 문제가 생길까? 브랜드 이미지는 공급자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공급자는 노력을 할 뿐 이미지를 가진 사람은 고객이다. 모든 매뉴얼이 가장 우선 고려해야 할 사람은 바로 고객이다. 고객이 불편을 느끼는 매뉴얼은 빨리 재활용으로 버려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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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을 실제 행동하는 사람에 대한 권한도 중요하다. 매뉴얼도 하나의 원칙이므로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러나 매뉴얼이 규정하지 않은 상황이거나, 고객이 불편을 느끼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고객 응대 직원의 판단에 따라 변경될 수도 있어야 한다. 이럴 때 현장 직원은 매뉴얼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부서에 예외 상황을 설명하고 매뉴얼의 업데이트를 고려하도록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의 노스트롬 백화점은 경영학에서도 고객 서비스 우수 사례로 자주 소개된다. 노스트롬에서 신발을 사서 신다가 1년 뒤에 반품이나 환불을 요구해도 바로 환불해 주고, 고객이 요청하면 심지어 경쟁 백화점에서 사서 고객에게 전달해 주기도 한다. 노스트롬에서 고객과 관련해 가장 먼저 그리고 큰 결정권을 가진 사람은 바로 매장의 판매 직원이다.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사람이 바로 그들이므로 그들에게 가장 큰 권한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노스트롬의 고객 서비스 철학이자 원칙이다. 
 
마케팅에서 고객 접점을 뜻하는 용어를 MOT라고 한다. Moment Of Truth의 줄임말이다. 고객을 대할 때 진실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매뉴얼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이해도 없고 실제 매뉴얼을 실현하는 사람의 권한도 없다면, 고객 접점은 결코 진실할 수 없다. 차라리 매뉴얼이 없는 것이 낫다. 
 
2012/05/20 11:53 2012/05/20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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